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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닉슨의 리더십(미국 제37대 대통령)

Stockage 발행일 : 2022-08-12

대통령의 리더십에 관한 책을 리처드 닉슨 얘기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 어찌 보면 고집스러운 집착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대통령 가운데 재임기간 중에 닉슨만큼 빈번하게 정적들의 도마 위에 올랐던 사람도 없었으며, 퇴임 후 역사가들로부터 혹평의 대상이 되었던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1996년 아서 슐레진저는 서른여섯 명의 역사학자들을 대상으로 미국 역대 대통령들의 업적에 대한 총체적인 순위를 조사한 적이 있다. 그는 치명적인 실정을 했던 율리시즈 그랜트 및 워렌 하딩과 함께 리처드 닉슨을 꼴찌로 낙점했다.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일으켰고, 그로 인해 197489일 스스로 퇴진했다. 그러나 그의 퇴진으로 막을 내렸던 장기간의 전국적 소요는 미국인들의 뇌리 속에서 결코 잊혀지지 않을 사건이 되었다. 또한 닉슨은 불명예를 영원히 안고 살아야 하는 유일한 대통령이 되었다.

사실 사람들은 닉슨이 심하게 꼬였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들 역시 심한 편견으로 인해 그의 업적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 빌 클린턴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4 반세기 이상 이어졌던 정치 인생을 통해, 닉슨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강력한 리더로 존경받았다. 첫 번째 임기가 끝난 후 1972년 닉슨은 재선에서 60%의 지지율을 얻었다. 이것은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기록이었다. 그 당시 재선에서 1,800만 표라는 압도적인 표 차는 역사상 유래가 없었다. 20세기 정치에서 프랭클린 루즈벨트를 제외하면 대통령 선거전에서 다섯 번에 걸쳐 공화당 후보로 지명되었던 사람은 오로지 닉슨뿐이었다. 선거를 거듭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을 그처럼 후원자로 끌어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는 뭔가가 있었으리라는 점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도자로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갔고, 반면에 그렇게 낮은 곳까지 추락했다는 것 또한 연구해 볼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닉슨은 모든 것을 얻었고, 그 모든 것들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받았다. 훗날 그는 이렇게 불평했다. 나쁜 짓을 저지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를 실제로 파괴한 것은 정적들이라고 말이다. “나는 그들에게 칼을 쥐어 주었고, 그들은 그 칼로 나를 찔렀다.”

 

권력과 리더십의 혼동

과거 역사를 뒤돌아 볼 때 대부분의 사회는 하향식 전체주의 구조를 갖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중요했던 인물들은 모두 원초적인 권력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법을 천부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들은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치열한 싸움에서 힘든 투쟁을 했고, 일단 권력을 지키기 위해 한없이 무자비했다. 닉슨은 그들을 철저하게 연구했으며, 그들의 업적을 숭배했고, 민주적인 사회에 맞는 지도자의 모습을 갖추기보다는 그들의 모습을 모방하려고 노력했다.

 

닉슨이 백악관을 떠난 후 집필했던 책 중에 하나인 리더(Leader)는 그가 평생 동안 공부해 왔던 리더십들로부터 얻은 교훈을 담은 진지한 에세이이다. 이 책은 드골의 말을 인용하면서 시작된다. “위대한 사람이 없으면 위대한 업적도 없다.” 에세이를 엮어 가는 동안 닉슨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또 다른 구절들이 있다. 지도자는 냉정하고 개인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계산에 입각하여 일을 처리해야 한다.”, “일단 권력을 장악했으면 지도자는 권력의 사용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역사는 권리와 그 자체를 위해 권력을 열망했던 독재자들의 몫이었다. 그렇지만 정상에 오른 대부분의 사람들은 권력을 사용하여 이룰 수 있는 일을 실현하기 위해 권력을 추구했고, 자신은 남들보다 그 권력을 훨씬 좋은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도자의 성격을 평가할 때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매력이 아니라 유용성이다. 교활함, 허영심, 은폐 따위는 일반적으로 볼 때는 매력적이지 못한 성격이지만 지도자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신판 마키아벨리 책의 서문에 있는 매스 러너의 글을 인용했다. ”명확한 사실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정치에서 이상과 윤리는 매우 중요한 규범이지만 기술적인 면에서는 무의미하다.“

 

이 문장들 가운데 완전히 잘못된 문장은 하나도 없다. 늘 그랬듯이 닉슨은 통찰력이 있었다. 그렇지만 위의 글귀들을 종합해 보면 그의 정권을 몰락하게 만들었던 일련의 사고구조를 읽을 수 있다. 닉슨은 궁극적으로 리더십이란 한 개인에 의한 권력행사라고 보았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보고, 역사를 움직이는 여러 힘과 맞서며, 오직 자신을 추종하는 무리들을 위해 행동하는 위대한 개인의 권력행사라 믿었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 지지자들과의 관계는 부차적인 관심사였다. 지도자는 지지자와 함께 하기 위해 그들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알려줘야 하지만 또한 그는 자신의 생각에 따라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전통은 이것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미국은 항상 상향식 사회였으며, 지도자의 권력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국민들로부터 나왔다. 미국의 헌법은 우리들, 미국 국민은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또한 링컨은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고 했다. 하지만 닉슨은 국민들을 철저히 불신했다. 그는 핵심적인 현안에 대해서조차 국민들의 지지를 결집시키기 위해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실들만 알렸다. 국민들이 베트남전에 대한 안내를 촉구했을 때 소위 침묵하는 다수를 빌미로 그가 했던 일이 실은 이런 방식이었다. 그는 캄보디아 침공을 숨겼고, 미국이 패전했다는 사실조차 은폐하려고 했다.

 

닉슨이 진정으로 국민들의 판단을 신뢰했다면 19726월에 그는 워터게이트 불법침입으로 이어졌던 그 사건의 잘못을 설명하기 위해 국민들 앞에 나섰을 것이다. 대신 그는 2년이 넘도록 워터게이트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 이렇듯 닉슨은 미국적인 민주주의 전통과 거리가 멀었다. 대통령의 또 다른 주요한 의무, 즉 도덕적 리더십의 문제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2천 년 전 아리스토텔레스는 국민을 선한 삶으로, 즉 중용과 미덕, 명상으로 이끄는 것이 국가의 중심과제라고 설파했다. 과두제든, 민주제든, 그 둘의 혼합이든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는 같다. 그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치학에서 논한 바 있듯이 정치 지도자는 그들이 선택한 정체의 정신을 국민들에게 교육해야 한다. “정치인은 시민들에게 도덕적 특징, 즉 도덕관과 도덕적 행위의 실천을 장려하는 문제에 가장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도자는 자신의 리더십을 통해 국민의 도덕정신을 결집해 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뜻이다.

 

대통령학 학자 어윈 하그로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대통령은 단순히 도덕적 법규를 국민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모범을 정립하고 국민들이 그런 최고의 가치를 잊지 않도록 장려한다는 의미에서 도덕적인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인은 도덕적 절대치로 국민을 억압하거나 차별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가치와 신념을 환기시킴으로써 국민들이 암묵적으로 그 같은 가치를 간직하고, 그것을 문제 해결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국 역사의 대부분을 돌이켜 보건대 최고의 대통령들은 그 같은 책무를 직관적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그리고 공화제의 최고 이상을 구현할 수 있는 법률과 관습을 정립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했다. 하지만 닉슨은 도덕에 대한 이야기는 했지만 정치에 도덕적 틀을 도입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의 역할이 헌법의 정신을 국민들에게 교육하고, “도덕관과 도덕적 행동의 실천을 장려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원초적인 권력 행사에 너무 미혹되어 있었고, 민주적 전통의 보존은 다른 사람의 몫으로 떠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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